(맨체스터 = 춘추필)
쓰러졌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일어났다. 다시 또 넘어졌다. 그렇지만 꺾이지 않았다. 또다시 곧추섰다. 그리고 내디딘다. 정상을 향한 도전의 길에 ‘포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2전3기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등정의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투혼을 불태운다. 야망의 발길을 거부하는 세계의 벽은 높고 두터웠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결코 쓰러지거나 주저앉지 않겠다며 스스로를 다지고 닦달했다.
인교돈(27·한국가스공사·남자 +87㎏급)-안새봄(29·춘천시청·여자 +73㎏)-김잔디(24·삼성 에스원·여자 -67㎏급), ‘태극 태권도’의 오뚝이들이다. 그들의 발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세계 무대의 야속함을 탓하지 않고 끈기 있게 ‘통곡의 벽’에 부딪쳐 온 ‘태권 도령과 낭자’들이다.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씩이나 쓰라림을 안았어도 그때마다 오뚝오뚝 일어나 ‘좌절의 늪’을 헤쳐 나왔다. 오히려 쓴맛을 앞으로 나아갈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정진의 보약으로 삼았다.
이들의 끝없는 투지에 힘입어, ‘종가’의 위엄을 떨치려는 한국 태권도는 웅비의 나래를 활짝 펴려 한다. 2019 맨체스터 세계 선수권 대회(15~19일·현지 시각)에서, 세 명의 ‘태극 전사’가 펼칠 날갯짓이 종주국의 용솟음치는 기세를 뽐내는 데 큰 힘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태권도는 선수층이 두껍다. 한 선수가 장기 집권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많은 맞수들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져 태극 도복의 주인공이 자주 바뀐다. 이런 특징을 감안할 때, 한 선수가 2년 주기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 세 번씩이나 나갈 수 있다는 점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이 맥락에서도, 세 명의 오뚝이가 보이는 집념은 대단해 보인다.
안방에서 열린 2011 경주 대회에서, 인교돈은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왕좌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자 –80㎏급 16강전에서, 마우로 사르미엔토(이탈리아)에 0:1로 져 분루를 삼켰다. 6년 뒤 역시 홈 코트에서 열린 2017 무주 대회에서, 인교돈은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신은 외면했다. 한 체급 올린 –87㎏급에서, 두 걸음 더 나아갔다. 하지만 종착점은 준결승전이었고, 손안에 넣은 메달은 동이었다. ‘천적’ 라린 블라디슬라프(러시아)에게 분패(6:8)했다.
8년 전 경주 대회에서, 안새봄은 세계 무대에 첫 도전장을 던졌다. 수확은 괜찮았다. 은메달이었다. 여자 +73㎏급 결승전에서, 안-카롤린 그라프(프랑스)와 맞붙어 쓴맛(0:8)을 봤다. 6년 뒤 무주 대회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동메달에 그쳤다.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비안카 워크덴(영국)에게 최종 관문 티켓을 내줬다(6:8).
김잔디는 2013 푸에블라 대회 때 첫선을 보였다. 여자–67㎏급 16강전에서, 하비 니아레(프랑스)와 만나 3:3 동점을 이루고 들어간 연장전에서 골든 포인트(0:1)를 내주고 물러났다. 4년 뒤 무주 대회에선 두 걸음 더 앞으로 나가 동메달을 수확했다. 준결승전에서, 세계 최강인 누르 타타르(터키)의 벽을 뚫지 못했다(9:11).
셋 모두 한결같이 2년의 세월 동안 절치부심하며 설욕을 별렸다. 그리고 본무대보다 더 어려운 국내 관문을 돌파하고 다시 태극 도복을 입었다. 그렇기에 셋의 각오는 남다르다. “이번만은!”을 부르짖으며 맨체스터 아레나에 애국가를 울펴 퍼지게 하겠다는 야망을 불사른다.
“세 번째 도전하는 무대다. 16강→ 4강 순으로 전진해 왔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타깃으로 정할 만하지 않겠는가? ‘우승은 필연’이라고 믿으며 철저히 준비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우승을 넘보겠다. 넘지 못할 산은 없다.”(인교돈)
“대회의 막이 내렸을 때, ‘오뚝이’라는 별명을 얻고 싶다. 은메달→ 동메달의 다음은 금메달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겠다. 매 경기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마음먹은 대로 경기를 풀어 나가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나?”(안새봄)
“훗날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뛰었다.’고 기억에 남길 수 있는 대회로 만들겠다.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자주 다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자만심을 버리고 자신감을 재충전할 수 있는 호기였다고 생각한다. 최상의 경기력으로 등정의 꿈을 이루겠다.”(김잔디)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은 세 오뚝이가 흘린 땀을 애정의 손길로 훔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