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대한민국태권도협회 대의원님들께!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한 지 어느새 1년 5개월여가 지나갔습니다. 길었던가 짧았던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새도 없었던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던 고통과 질곡의 세월이었습니다.
굴레를 쓰고 소용돌이 속을 헤쳐 나온 지난 17개월간 제가 줄곧 지키려 애썼던 철학이자 소신이 있습니다. 민주적 행정입니다. 많은 수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회장에 뽑힌 저로선 감히 깰 수 없는 대원칙이었습니다. 그 맥락에서, 모든 행정이 민주적이면서도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이뤄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볼 때 단 한 점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행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아리 돼 돌아오는 목소리는 칭찬보다는 비난이었습니다. 오로지 대한민국 태권도의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 만들어 가고자 하는 저의 열정은 이러한 비난의 잔인한 채찍 속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비난들이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싶습니다. 물론 태권도 일선 행정의 경험이 충분치 못하여 간혹 허점을 드러냈을 것이라는 반성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많은 호사가들의 손가락질과 입에 오르내리는 험담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해명하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반응을 자제하려 했습니다. 민주적 행정 수행에 따르는 불가피한 파열음일 수도 있다고 여기며 화합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기꺼이 인내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런 험구에 일일이 대응하고 반박할 때에 파생될 수밖에 없는 태권도계의 불협화음이 결국 우리 모두가 아끼는 소중한 인류 문화 유산 태권도에 치욕과 상처만 가중시키고 태권도계를 어지럽게 만드는 치명적 독약이 되어 부메랑처럼 우리 자신에게 날아오게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충정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대승적 차원에서, 저는 한결같이 침묵하며 인고의 시간을 감내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대의원님들까지도 밖에서 흘러 다니는 여러 가지 형태의 비판이 상당 부분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경향이 농후해졌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가 말씀하셨습니다. “정직으로 원한을 갚아라.” 제가 어렸을 때 선친께서 늘 들려주며 강조하시던 경구입니다. 거짓 없는 정직한 삶, 제가 이제껏 살아오며 끊임없이 지키려 애쓴 인생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삼가려 힘써 온 제가 진심으로 밝히는 일의 인과 관계임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새해는 ‘희망’이라는 단어와 연결 지어 펼쳐 가고 싶어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2018년은 무척이나 험상궂은 얼굴로 불쑥 다가왔습니다. 1월 하순에 개최된 대의원총회에서 많은 사람의 의표를 찌르며 발생한 해프닝, 1월 말 당초 생각과 전혀 다르게 강행될 수밖에 없었던 상근이사의 보직 해임, 2월 초 이른바 부회장 3인방의 서운한 문제 제기, 4월 초 야멸차게 요청됐던 임시 이사회의 불발로 역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음이 입증된 일, 이어서 강한 음성으로 요청된 임시 대의원총회 등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그냥 불쑥 나타난 것일까요, 아니면 예고된 것들일까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것은 태권도계를 심심치 않게 뒤흔드는 계절병이라 볼 수도 있고 긴 시간 예고되고 잉태되어 온 비극의 실체들이라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태는 어이없게도 오일남 전 상근이사의 보직 해임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시발점이 되므로 마땅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오 이사가 자신의 보직 해임이 부당하다며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그 결정을 보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사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핵심 요소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겠으며 다음에 법적 결정이 내려지면 자세하게 해명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오 이사 자신이 인정했듯이 상근이사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 사퇴하겠다는 약속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입니다. 보직 해임을 놓고 오 이사 자신은 강압적으로 이뤄진 약속이었다느니 심지어 그런 약속도 한 적이 없다느니 다양하게 사실을 호도하거나 왜곡시키고 있지만, 그의 약속은 너무도 분명하여 이를 직접 들었거나 목격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별히 실태 파악을 원하시는 분에게는 언제라도 자세하게 소명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합당한 기회에 설명되리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오 이사 보직 해임 사건이 도화선이 돼 이른바 비선 라인이 부당하게 행정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대회위원회 구성이 규정 위반이며 잘못된 것이므로 백지화시켜야 된다는 지적들이 강하게 제기되고 우리를 악령처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주도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이미 태권도계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세 명의 보직 부회장들입니다.
부회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 임원인가요? 대한민국태권도협회 정관은 이를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제5장 임원 제24조(임원의 직무) 제2항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한다”라고 분명히 규정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지요? 이들은 보좌는커녕 도리어 회장을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어이없는 처신을 거리낌 없이 펼쳐 오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지적과 주장에 관하여는 얼마든지 해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몇 차례에 걸친 그들과의 면담에서 핵심적 요체들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 관하여도 그렇고 일반적으로도 저 자신을 위한 변명에 급급하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며 제가 잘못된 점이 있으면 담백하게 시인하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교직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회장들이 지적하는 사항들 속에도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조각들이 이렇게 커다란 풍파를 불러일으키고 태권도의 명예와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사태로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태권도 가족 여러분,
모든 태권도인은 다 소중합니다. 한 분 한 분 사랑이 넘치는 손길로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이에 못지않게 소중한 건 우리의 태권도입니다.
저는 태권도계의 어떤 직책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태권도가 혁신적으로 발전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모든 것을 언제든지 내려놓을 마음의 준비도 돼 있습니다. 이런 심정을 주위 친지들과 상의한 바도 있으나, 그분들은 한결같이 태권도계를 어두운 구름처럼 덮고 있는 그릇된 풍토를 과감히 고치는 변곡점을 찾고 떠나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부족하고 서툰 점이 있다면 이런 사태를 이끌어 온 당사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고 떳떳하며 자랑스럽습니까?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역대 회장님들을 눈물 흘리게 하고 불신임을 추진했으며 큰 잘못도 아닌 걸 가지고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회장을 욕되게 한 그런 일들은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이런 일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세 명의 보직 부회장들께서는 이번 기회에 시도 협회 회장직에서 저와 함께 동반 사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의원님들의 깊은 통찰과 태권도를 향한 애정이 이러한 때에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간절한 호소의 말씀을 마칩니다.
2018년 4월 12일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최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