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운을 한 번에 다 쓴 듯싶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얼떨떨해 보였다. 보는 사람의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 자신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았다. 솔직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욱 순박한 심성이 엿보였다. “아직도 공중을 밟고 다니는 것 같다.”
그럴 만했다. 태극 도복 한 번 입지 못했는데, 단숨에 꿈에서 그리던 과실을 땄으니 오죽하랴. 아시안 게임 금메달! 얼마나 맛보고 싶었던 달콤한 과일이런가. 깨물고 어루만지고를 반복해도 벅찬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끝내 울음까지 터뜨렸으니 말이다.
강민성. 약관, 스무 살의 어린 그가 반전과 순애보가 어우러진,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의 주인공이 됐다. 지독히도 괴롭히던 좌절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영광의 마침표를 찍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하계 아시안 게임 금을 수확한 그의 이야기, 곧 희곡 ‘4전5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권도 품새 남자 개인전 우승의 얼굴은 그였다.
단순한 금 한 개가 아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이 올린 첫 금 결실이다. 얼마나 멋진 마무리인가.
그에겐 미래가 없어 보였다. 밝은 앞날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신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쓰러지면 일어났지만 또 쓰러져야 했다. 신은 희롱하려는 양 그에게 시련만을 안겼다. 네 차례나 국가대표에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메아리는 들려올 기미조차 없었다. 불운은 좀처럼 끝자락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2006년, 영일초등학교(경북 영주시) 2학년 때 처음 도복을 입은 이래 12년 동안 단 한 번도 태극 도복과 인연의 끈을 맺지 못했다.
지난 1월, 그는 국가대표의 꿈을 접으려 했다. 그리고 직업 군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 어렸을 때 영양실조로 쓰러지기까지 했을 만큼 가난한 집안 살림을 생각해 내린 결심이었다.
그때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다가왔다. 여자 친구(허우경)였다. 같은 배움의 터(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에서 사랑을 키워 오던 동갑내기의 간곡한 설득에, 그는 마음을 바꿨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승부의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여자 친구의 말은 그를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그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그는 다시 도복 끈을 졸라맸다. 여자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해 받은 돈으로 고기를 사 주며 그의 건강을 챙기기까지 했다.
신도 결코 비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이번 아시안 게임 조직위원회를 통해서다. OCA가 조직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품새 세부 종목 수를 늘린 것이다. 이번 대회에선, 품새가 처음 채택되며 당초 남녀 단체전만 실시될 예정이었다. 뒤늦게 남녀 개인전도 실시키로 함으로써 금메달 수는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대한태권도협회(KTA)는 개인전에 나갈 국가대표 선발전을 뒤늦게 6월에 다시 열었다. 그는 이번만은 꿈을 이뤘다. 당당히 1위를 차지함으로써 꿈속에서도 그리던 태극 도복을 입을 수 있었다.
“행운이 ‘1’을 달고서 잇달아 찾아왔다.” 그렇다. 자신의 말처럼, 그는 네 번의 1이 잇따르면서 반전 희곡을 썼다. 첫 국가대표→ 첫 국제 무대→ 첫 국제 대회 금메달→ 한국 선수단 금메달 1호.
그는 다시 달린다. 또 하나의 1을 목표로. 오는 11월 세계 품새 선수권대회(대만)에서 정상을 밟고 세계 무대 첫 금메달을 수확하려는 그의 꿈이 영글기를 기대한다.